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방문하셔서 진료를 받아보신 적 있으세요? 혹시 이번이 처음이세요? 그렇다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의 진료가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이 되며 또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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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들은 정신건강의학과 회당 진료시간이 무척 길고 또 비용도 매우 비싸다고 알고 계시더군요. 예를 들어 진료시간은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고, 진료비도 수십만 원이 넘는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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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는 처음이지만, 내과 의원에 가서 내과 진찰은 받아보셨겠지요?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과 종합병원에서의 진료는 내과 의원/병원의 진료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통상적으로 정신요법 상담과 약물요법 처방으로 기본 진료가 이루어집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합한 것을 통상적인 정신의학과 진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특히, 이 진료 과정 중에서 한 환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증상들에 대하여 생물학적, 사회학적 그리고 심리학적인 접근을 통해 이를 평가하고 치료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통상적인 기본 진료를 받는다면 진료 시간은 10-20분 정도에 비용도 만 원 안팎 정도가 됩니다. 물론 자가 보고식 설문검사나 의사가 시행하는 임상평가검사 그리고 혈액검사 등이 시행되면 진료비가 좀 더 늘어나게 되겠지요.만약, 심층 정신요법(EMDR 포함)이나 임상 심리검사를 원하는 분이 계시다면, 먼저 기본 진료를 예약하셔서 방문을 해주시고 기본 진료 과정 중에서 담당 의사와 충분한 상의 후에 이에 대한 시행 여부를 결정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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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정신건강의학과 진료가 익숙하신 분들은 이렇게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으실 겁니다.
제주에서 진료를 하다 보니 육지에서 여행이나 출장을 오셔서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 처방을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손쉽게 내원하시는 분들도 종종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미리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슬하’에서는 원내에서 약조제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약 조제를 받는 것은 가까운 약국을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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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참여가 핵심입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어느 과에서의 진료는 환자가 말 한마디 안 해도 진료의 처음부터 끝까지 의사 단독으로 진행될 수가 있습니다. 건강검진을 생각해 보세요. 저는 제 위내시경 검사를 진행하신 선생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네요. 말 한마디 섞어본 일도 없고요. 결과도 다른 선생님이 설명해 주시던데요?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에서의 진료는 이와 전혀 다릅니다. 환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면 할수록 진료가 잘 이루어지는 구조입니다. 우리 선생님이 척 보면 내 속을 다 들여다 봐주시겠지? 라고 오해하시면 진료는 정말이지 산으로 가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반대로 최상의 경우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진료 오시기 전에 자신이 평생 겪었던 트라우마와 가족력 그리고 현재 겪고 있는 스트레스와 증상들을 A4 용지에 정리해서 오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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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시간은 대화 시간, 대화가 검사와 치료를 구성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료 시간은 그 자체가 검사 시간도 될 수 있고, 또 치료 시간도 될 수가 있습니다. 환자와의 대화는 검사의 시간이 됩니다. 의사는 환자의 낮고 느린 목소리와 움츠려진 어깨를 보고 깊은 우울감을 함께 느낍니다. 간단한 질문에도 스스로 답하기 주저하며 보호자에게 고개를 돌리는 한 어르신을 보면서 기억력의 감퇴와 불안감을 의심합니다. 현재와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증상의 원인과 유발 요인도 탐색을 하게 됩니다.
또한 대화는 치료의 시간이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어디 가서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라도 털어놓으니 후련합니다.”라고 저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저도 이에 힘을 얻어서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 혹시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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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치료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슬하’는 개원한지 4년을 지나 5년 차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전체 환자의 50-60% 이상을 차지합니다. 지난 4-5년의 경험으로 말씀드리면, 평균적으로 우울증 혹은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한 환자를 진료하면서 3개월 정도가 지나면, 내원 당시의 증상이 반 정도로 경감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면 남아 있는 증상에서 다시 반 정도로 감소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경과는 대표적인 혹은 평균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진료의 단위를 월 또는 계절로 삼아야 할 정도로 정신건강 관련 증상이나 질환들은 만성 경과를 밟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재발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아직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대한 문턱이 높기 때문인지 내원 전에 이미 증상이 만성화된 상태가 되어 비로소 병원을 찾는 경우가 꽤 많은 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더 많은 진료 기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치료자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분이든지 증상의 초기에, 질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일찍 병원에 오셔서 하루라도 빨리 치료받고 회복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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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주십시오
비유를 한 가지 해보겠습니다. 저의 과거 학창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저희 반에서 1등 하는 친구는 개근은 기본이고, 지각은 상상할 수도 없고, 항상 수업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서 선생님 말씀에만 집중하는 친구였습니다. 숙제는 물론이요, 예습과 복습도 늘 한결같았습니다. 같은 선생님께 배웠는데 저와 성적 차이가 꽤 많이 났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도 이와 같은 원리가 흐릅니다.
'슬하' 진료실에서 간혹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선생님께서 진료시간에 제게 해주셨던 말씀을 기억했다가 메모를 해서 가끔씩 다시 찾아봅니다.” 그분의 말씀에 오히려 제가 감동을 받습니다. 제가 한 게 뭐라고... 그분이 진료시간을 소중히 생각해 주셨기에 누구보다 많은 것을 받아 가셨고, 또 그만큼 많이 회복되셨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