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뇌의 무게는 약 1.3kg으로 단단한 두개골에 싸여있습니다. 현미경을 통해 관찰해보면 우리 뇌는 1천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와 1조 개 이상의 보조 세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체중의 2%에 불과한 뇌라는 작은 기관에서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전체 에너지의 약 20%가 소모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고차원적인 사고와 판단을 하며, 세밀한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합니다. 그리고, 온몸의 장기와 근육들을 신경신호와 호르몬을 통해 조율하는 뇌는 우리 몸의 중심 중의 중심입니다.
정신의학의 주 관심영역은 바로 '뇌' 입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정신의학의 관심영역은 뇌의 작용으로서 나타나는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안타깝게 마음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옛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나 봅니다. 다행히 뇌라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장기를 통해 우리 인간의 마음이 구현되기에 우리는 뇌를 통해서 마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엿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정신의학 전공자로서 여러분들께 이 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뇌의 기능을 잘 이해하면 우리의 정신건강을 지키고 향상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쩌다 보니 석사학위는 뇌파를 분석하는 것으로, 박사학위는 뇌혈류를 분석한 논문으로 그리고 연구자로서의 저를 세상에 알린 연구는 쥐와 인간의 뇌 조직 데이터를 분석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과거 뇌 연구의 모든 경험들을 오늘 ‘슬하’의 진료실에서 당장 사용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뇌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또 뇌라는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마음의 빛을 따라서 여러분과 함께 탐험을 할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하잖아요. 저는 사실 이 말을 좀 싫어해요. 왜냐하면 우울증은 감기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질긴 병이거든요. 그래서 심지어는 우울증은 '마음의 암'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예요. 하지만 이 말에도 지혜가 담겨있는데, 감기가 왜 한철이잖아요. 한 번 아팠다가 사라지고 또 나타나고 이렇게 에피소딕한 면은 잘 반영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감기라는 것이 바이러스가 들어와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그 와중에 면역세포들이 바이러스를 물리치면 회복이 되는 거잖아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정신질환들도 이런 면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를 겪으면 우리 몸과 뇌에서 이에 대응하는 반응이 나타나고 이러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 기억을 해소하면 회복이 되는 것이지요.
감기를 일으키는 원인은 바이러스, 전쟁터는 코와 목 그리고 기관지이고, 아군은 면역세포라고 본다면,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은 스트레스 혹은 트라우마, 전쟁터는 뇌/마음, 아군은 뇌의 적응적 정보처리기능(혹은 세포/회로)이 됩니다. 뇌에 쌓이는 스트레스가 자연스럽게 처리가 되면, 소위 말하는 인생공부가 되어서 더욱 성숙해지지만, 반대로 어떤 이유에서든 처리가 되지 못하고 막혀 버리면, 트라우마로 남아 두고두고 탈을 일으키게 됩니다.
인체 면역에서 중요한 기전 중의 하나가 기억입니다. 복숭아 알레르기, 새우 알레르기 들어보셨지요? 과거에 복숭아에 감작된 사람들은 현재 혹은 미래에 복숭아를 먹으면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서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런 반응이 우리 마음(뇌)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속담을 예로 들어볼게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과거에 자라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마음(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현재 혹은 미래에 자라와 비슷한 솥뚜껑만 봐도 다시 나타나서 놀람 반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실제 진료실에서는 초등학교 시절 발표 시간에 놀림을 당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한참 뒤에 대학 혹은 직장 발표 시간에 나타나 한 사람을 괴롭게 하고, 과거 가정에서 부모님의 다툼을 자주 경험하고 자란 사람이 커서는 어떤 다툼이든 피하고 안 일으키려고 필사적으로 피하는 것도 예가 되겠지요.
이런 양상으로 볼 때, 면역반응과 정신질환은 매우 관련이 깊습니다. 실제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 중에서 알레르기, 장염, 류머티즘 관절염, 자가면역질환 등 면역관련 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이 많고, 반대로 면역관련 질환을 겪고 계신 분들 중에도 정신질환을 동시에 갖고 계신 분들이 많답니다. 이런 점은 면역기능과 정신기능 사이에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지만,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상적으로는 정신건강이 호전되면, 면역기능이 좋아지고, 반대로 면역기능이 향상되면 정신건강에도 차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진료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의외로 많이 받습니다. 이 병도 유전이 되나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중년 부인께서 저에게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내가 이런 병에 걸려서 혹시나 우리 아이들에게도 영향이 있으면 어쩌지요? 혹은 우리 딸, 아들도 공황장애라고 하던데 이게 나 때문인가요? 우리 어머니도 치매로 돌아가셨는데, 그럼 나도 치매에 걸리게 될까요? 다른 병은 다 걸려도 좋은데, 제발 치매만큼은 안 걸렸으면 좋겠어요. 자식들에게 못 할 짓 하는 것이니깐요.
제 과거의 연구영역에 관련한 분야이고 또 질문이어서 이런 경우에는 과학적인, 의학적인 설명을 많이 드리는 편입니다. 아마 통상적으로는 그럴 리 없다. 병이라고 다 유전이 되는 건 아니다. 누가 무슨 병이 걸릴지 사람이 어떻게 알겠는가?라면서 환자를 안심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에 반해서 저는 가급적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에 약간 더 비중을 두어서 접근하는 편인 것 같아요.
유전적인 성향이나 가계도를 잘 파악하면 의외로 치료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진단을 토대로 자녀의 진단을 예상해볼 수도 있고, 자녀에게서 효과가 있던 약물을 알면, 부모님 치료에서 약물을 선택할 때 좋은 힌트를 얻을 수도 있지요. 형제도 마찬가지겠네요.
혹시라도 정신건강 관련하여 유전상담이 필요하시다면 꼭 내원해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성심껏 상담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