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얼마나 크고 좋은 병원들이 많이 있을까요? 대한민국의 남쪽 섬나라, 제주도에도 이미 여러 정신건강의학과 병원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작은 의원이 ‘슬하’입니다.
과거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를 하던 시절에는 많은 의료진을 모아서, 넓은 공간을 차지하여, 보다 많은 환자를 진료해내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었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흐름을 아주 충실히 쫓아가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병원을 떠나 개인 의원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나의 병원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진료를 받아야 한다면 어떤 병원을 가고 싶을까? 나는 어떤 병원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우수꽝스럽지만, 그 당시 제가 우리 ‘슬하’의 롤 모델로 떠올렸던 곳은 어떤 좋은 병원이 아니라 '○○반점'이라는 저의 단골 중국집이었습니다. 이 식당은 제가 근무하던 대학병원 앞에 있었던 수십 년 된 중국집입니다. 저를 지도해 주셨던 원로 교수님께서도 젊어서부터 자주 들리셨던 꽤 오래된 식당입니다. 이 식당은 배달을 하지 않았습니다. 술과 음료수를 팔지 않았습니다. 휴일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무 때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 결코 아니었습니다만, 이 집의 장점은 분명했습니다.
① 플라스틱 대신 유리그릇을 썼습니다. ② 조미료를 쓰지 않았습니다. ③ 홀과 주방이 정말 청결했습니다. ④ 맛은 담백했고 자극적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그 불편했던 이유들이야말로 이 식당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중요한 선택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요리사가 운영하는 유명한 식당은 아니었지만, 적당한 가격에 몸에 나쁜 재료는 절대 쓰지 않는 곳이라는 믿음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최고의 요리사가 운영하는 크고 화려한 식당 같은 병원이 아니라 퉁퉁하고 무뚝뚝한 주인장 할머니가 뒷짐지고 지키고 계시는 작지만 믿음직한 그리고 내실 있는 의원을 만들어 보자! 이런 저의 엉뚱한 생각에서부터 ‘슬하’가 시작되었습니다.
“오 선생, 우리 병원 환자들은 정말 치료가 된다. 나는 그게 보여”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어느 모임에서 한 선배 정신과 의사로부터 이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너무 배가 아팠습니다. 정말 부러웠습니다. 사촌이 땅을 산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담당하는 환자들의 증상을 어느 정도 호전시켜 줄 수는 있었지만 (병을) 낫게 해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좋은 논문을 많이 썼으니까 괜찮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일주일에 2-3일 정도 외래 진료를 하고 나머지는 입원 병동 회진 그리고 연구와 교육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외래 담당 일이 되면 하루 70-80명을 진료해야 하는 부담 역시 상당했습니다. 산더미 같은 일을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외래 진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던 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제한된 진료시간과 너무나 많은 환자들, 의사인 저는 환자를 세심히 볼 수 있는 권리가 없었고, 그런 저를 찾아온 분들 역시 치료를 위한 진짜 진료를 받을 권리를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의사로서 마음이 아픈 사람을 제대로 치료하고, 아픈 사람은 의사에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이런 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부끄럽지만 저는 이것도 모르면서 임상교수라며 나름 어깨에 힘을 주고 병원을 돌아다녔었습니다. 늦었지만 저는 이것을 큰 대학병원을 나와 저의 작은 개인 의원 ‘슬하’를 통해서 조금씩 알고 또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슬하’를 통해서 저는 진료가 제 업무의 1순위가 되었고, 한 환자에게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진료에 EMDR 치료를 접목하는 기회 또한 얻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 진료실에서도 단순히 좋아지는 것을 넘어서 진짜 낫는 사람들을 하나씩 둘씩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아! 진짜 치료가 될 수 있구나. 그 선배 병원에서뿐만이 아니라 우리 ‘슬하’에서도 이것이 가능하구나 하고 말입니다.
정신질환은 만성병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치료가 Cure(치유와 회복)가 아니라 Care(관리와 돌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신질환은 대부분 뿌리가 깊고, 원인도 불명확하고, 확실한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완전한 회복을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진료실의 문턱이 높았던 것입니다. 확실한 보장이 없기에 모두 다 진료실 앞에서 문턱 넘기를 주저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료실 밖을 서성이고 있으며, 진료실 안으로 들어와서도 문밖을 돌아보는지 저는 조금 압니다. 그래서 저 역시 확실한 보장을 만들어 보려고 연구를 진료보다 더 우선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
과거의 저는 진료가 2순위이고, 연구가 1순위였습니다. 저는 제 삶 가운데서 전혀 뜻하지 않게 2순위와 1순위가 서로 바뀌게 되면서 심지어 나 같은 사람이 있는 작은 진료실에서도 치료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의 바람은 '슬하'가 비록 작은 개인 의원이지만 이곳에서 어느 한 사람은 진짜 치료를 경험하셨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