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은 결국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다루는 의학의 한 분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게 될 때 가장 중요한 반응을 일으키는 장소가 바로 우리 뇌와 마음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뇌는 스트레스, 트라우마와 내가 싸우는 전쟁터가 됩니다. 이 전쟁에서 패하여 내가 스트레스, 트라우마의 포로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승리하여 기쁨과 자유를 만끽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우리의 마음/뇌는 평화의 땅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 자체가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의 연속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필연적으로 마음의 상처를 가질 수밖에 없고,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할까요?
가련한 인생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 마음이 건강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 왔다고, 진료를 받았다고 마음이 아픈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병원 밖에도 아픈 사람이 엄청 많아요.
트라우마는 정말 그 종류가 다양하지요. 전쟁과 테러, 화재와 각종 사고, 자연재해에서부터 신체 질병과 투병 과정, 가정과 학교 그리고 직장에서 경험하는 폭력과 극심한 고통까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인생의 어떤 시기에, 어떻게 경험했는가에 따라 그 영향이 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한 개인이 일생을 살면서 겪는 또 겪어야 할 트라우마는 (더 쉽게 표현하면 불우한 일이나 사건들)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지요. 그리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모두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당뇨, 고혈압, 갑상선 질환과 같은 만성질환 그리고 류머티즘, 각종 염증성 질환들도 트라우마와 밀접한 연관을 가집니다.
자신이 사랑을 받는 소중한 존재이며, 이 세상에 자신이 안전하며 또한 스스로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애착은 질병을 예방하며 치료하는 힘과도 연관이 됩니다. 몸의 질병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질병에도 이 원리가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삶을 전쟁터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이 건강한 애착에서 나옵니다. 인생의 폭우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피난처 혹은 대피소가 됩니다. 그 안전한 공간에서 푹 쉬고 기운을 차리고, 조금 기다리면 날씨가 다시 맑아옵니다.
사람의 뇌를 컴퓨터에 비유한다면, 애착은 프로그램입니다. 컴퓨터 하드웨어의 사양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고 한다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생애 초기에 설치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지요? 한 번 설치된 프로그램대로 컴퓨터가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를 구입해서 좋은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들 아실 겁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에 좋은 부모 혹은 양육자, 선생님과 친구 그리고 친척들을 만나서 친밀한 관계를 경험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여기까지 글을 읽다 보면, 나는 그렇지 못했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겁니다. 지금부터는 이런 분들을 위해서 좀 더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컴퓨터 비유를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업그레이드가 이뤄지는 것 기억하시지요?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허약한 애착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입니다.
'신경 가소성'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성장이 끝난 뇌세포가 계속해서 발달한다는 것입니다. 이 신경 가소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 동안 애착을 건강하게 변화시킬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지우고 새로 설치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 또한 결코 아닙니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한 것을 개천에 비유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애착을 가진 한 성인이 되어서 나의 가족과 동료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이제는 오히려 그들을 사랑으로 보호하고 보살펴 준다면 그것이 바로 용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님이 괜한 걱정할 것 같아서요.” “남편은 제가 얼마나 괴로운지 모를 겁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정신건강의학과에는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족들 모르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을 찾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어떤 면에서는 가장 가까운 가족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상의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전혀 반대의 경우도 봅니다.
“지난번 선생님과 상담했던 내용을 남편에게 이야기해 주었어요.” “다음번엔 부모님과 함께 와도 될까요?” “우리 아이도 이곳에서 진료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한 개인은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서 성장하고 생활을 합니다. 가족을 배경으로 또 기반으로 하여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교류합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이야기할 때, 가족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은 우리 가족 역시 아프다는 뜻입니다. 아내가 아픈데, 남편과 자녀가 어찌 편안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건강하다는 것은 우리 가족 역시 건강하다는 뜻입니다. 아이가 질병으로부터 회복되면, 부모와 형제 모두 기쁘고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없던 병도 떠나갈만큼 절로 건강해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진료실 책상 앞의 단 한 분을 진료하고 또 회복되도록 돕습니다. 하지만 그 분의 자녀들, 부모님들 혹은 형제들도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희망하는 것은 '슬하'를 거쳐가신 분들이 회복하는 것과 또 그것으로 인하여 그분의 가족분들도 더욱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정신건강의 진정한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