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4년 새해가 시작된지도 벌써 한달이 지나갑니다. 제 연수 시간도 벌써 6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는 제주에서 떠나온 날 보다 이곳 북가주에서 지낼 날 들이 많았었지만, 이제부터는 역전이 되었습니다. 남은 연수 시간을 알뜰하게 더욱 잘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야 이곳 생활이 좀 적응이 된 듯 합니다. 요새는 아무일도 없이 평안히 지나가는 날들이 제법 많습니다. 정착 초기에는 오늘은 어디가 고장이 나고, 무엇이 없어지고, 어떤 실수를 하고, 뭘 몰라서 쩔쩔매고 매일매일이 사건 사고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자전거를 타고 연구소로 출근하는 길에 여러가지 풍경들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아! 우리 동네에 이렇게 큰 나무가 있었구나.”, “미국 골목길에는 참 예쁜 집들도 많구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생활 적응에 정신이 없었던 것이겠죠. 이제야 눈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
눈이 밝아지는 것 처럼 이곳의 언어를 듣고 말하는 귀와 입도 확 열리고 또 터졌으면 좋겠네요. *^^* 연구소실에서 동료들의 말길을 못 알아듣고 긴장하는 것이 제 일상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지난 번에 약속드린대로 제가 살고 있는 팔로알토라는 동네를 잠깐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팔로알토는 실리콘벨리와 스탠포드 대학이 자리잡고 있는 북가주의 소도시입니다. 저희 집에서 차로 멀리 않은 곳에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은 차고가 있구요. 이 차고에서 창업이 시작되었다는 전설(?)이 있지요.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창시격인 휴렛 팩커드 회사의 본사도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스탠포드대학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동네 이웃분들의 면면도 이와 관련이 많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교직원들이 정말 많구요. 애플, 테슬라, 아마존, 구글 등등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이곳에서는 아주 흔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인종들도 아주 다양합니다. 백인들도 물론 많지만, 멕시코인, 유럽계 그리고 유대인, 아랍계, 아프리카계, 인도, 중국, 일본, 한국 등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께 좀더 소개해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는데요. 바로 집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입니다. 공원의 이름이 어느 여성의 이름을 따왔는데요. 그녀의 이름은 후아나 브리오네스 (Juana Briones) 입니다. 그리고 공원 바로 옆에는 초등학교가 자리해 있는데요. 그 학교의 이름도 브리오네스 초등학교입니다. 처음에는 제 코가 석자였으니 브리오네스가 누군지 내가 알게 뭐야 하면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스탠포드 의과대학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스탠포드 병원 및 북가주 의학역사 세미나에 참석을 했었고, 그 때 ‘브리오네스’라는 단어/인물을 듣게 되었는데. 역시나 동일 인물이었습니다.
브리오네스는 1800년대 이 지역에서 살았던 한 여성입니다. 그녀는 멕시코, 미국 원주민 그리고 스페인계 혼혈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소개할 때, 사업가 와 의료인 이라는 직함이 항상 따라 붙습니다. 180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한 여성이 자신의 이름으로 토지를 소유하고 직접 사업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브리오네스는 무학에 문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변호사를 고용하여서 알코올 중독이었던 남편의 가정폭력으로부터 자신과 가족들을 지켜냈고, 수천 에이커의 땅을 구입하여 농장을 경영하며, 수 많은 인부들을 구제하고 또 고용하였으며, 약초를 이용한 의약품을 만들었고, 조산사 일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제주에 김만덕이 있었다면, 이곳 팔로알토에는 후아나 브리오네스가 있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척자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정말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두 훌륭한 인물들에 대한 깊은 존경을 표하면서 이번 글을 마무리 해봅니다.
이제 남은 기간 동안에는 이곳 연구소나 학회에서 배우고 접하는 새로운 (정신)의학 기술이나 동향들을 몇가지 소개해드리는 시간을 갖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럼 건강하시구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