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마태복음 6장 34절)
Therefore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
저는 걱정이 많은 편입니다. 이번 코로나 대유행 시기를 겪으면서 염려와 불안이 더욱 많아 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혹시 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문뜩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제 머리 속에서는 짧막한 영화 한 편이 스쳐지나갑니다. 어느 어두운 한 공간에서 내일 진료예약 명단을 바라보면서 당황해하는 그리고 어찌할 줄을 몰라하는 한 남자의 모습 그리고 문 닫힌 슬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의 표정과 내뱉는 말들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대쳐해야 하나 고민하고 고민해봐도 뾰족한 수가 없고, 어떤 대책을 마련해도 그 대책은 다른 문제들을 불러오기만 합니다.
그런 저에게 마태복음 6장 34절의 성경말씀은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실 (부끄럽지만) 저도 진료실에서 환자분들께 “걱정하지마세요. 괜찮습니다.” 라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스스로도 걱정을 많이 하면서 말이죠.
이 성경말씀이 오늘 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 두가지 이유를 여러분과 같이 공유하고 싶습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첫번째는 내일이 스스로를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번째는 각각의 날들이 어려움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두가지 이유/문장들을 읽어보시면 뭔가 어색함이 느껴지실 겁니다. 그래서 그 뜻이 바로 와닿지 않으실 겁니다. 그 까닭을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이 두 문장의 주어가 ‘사람’이 아니라 ‘날(day)’ 바로 ‘시간’이기 때문니다. 우리는 사람인 내가 걱정하고, 잘 준비하고 대쳐하면 어려움이 줄어들고 또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성경말씀은 ‘시간’이 이 모든 것들을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간 속에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어려움들이 있고, 이 어려움들을 인간의 삶 가운데 나타나게 할 것인가 아닌가를 염려하는 것 역시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즉, 결정권이 시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결정권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시간’의 존재 앞에서 저는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시간 보다 훨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겠구나. 시간 정도 되어야 염려할 수 있고 나는 어쩌면 걱정할 자격이 없는 존재일 수도 있겠다”
“나는 (혹은 너는) 걱정할 자격이 없다.” 라는 생각에 이르니 오히려 제 마음이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과거에 “넌 밥 먹을 자격이 없어” 혹은 “너는 여기에 들어 올 자격이 없어” 와 같은 말들을 들어왔을 때는 불안과 좌절을 겪었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너는 걱정할 자격이 없다 혹은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시간의 위대함과 영원함을 조금이라도 인식할 수 있었고 그 앞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티끌 같은 존재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걱정이 떠오르면, 마태복음 6장 34절 성경말씀을 묵상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